“폭로는 두려움 없이 말하기, “진실의 용기”라 할 수 있습니다. 폭로는 푸코가 재발굴한 파르헤지아 개념과 연동됩니다. 파르헤지아란 두려움없이 말하기로서 진리를 향한 고된 여정이자 진리에의 “끝없는 노동”이며 자신의 삶을 건 모험적 발화로서 자신은 물론 세계에 파장을 던져주는 사건입니다. 또한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리를 직시하는 용기이자 끊임없이 “자기와 자기 자신간의 진리놀이”를 철저히 감행하는 일입니다. 이때 자기 자신이란 고정된 동일자로서의 실체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의 진리놀이’라는 실험의 팽팽한 긴장을 견뎌내려면 끊임없는 자기 변형과 변이라는 생성의 장에 내던져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앎과 말하기의 생산은 고질적 습관의 변경, 편견의 패기, 태도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변신의 에너지가 부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말하기란 동어반복에 불과하며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간증하는 행위일 따름입니다.
자기 자신, 즉 말해져야 할 자기 자신이란 유폐적이지 않고 세계와 타자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진리놀이’는 스스로에 대한 변이의 궤적이자 자신과 세계에 대한 조형력 형태를 구상하고 조각하는 실험행위입니다. 헬페미니스트의 폭로가 두려움 없이 말하기 양식인 이유는 우선 자아 담론이 아닌 자기의 변신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헬페미니스트는 폭로를 통해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자아를 건져 올려 세계로 내던지는 실험을 감행합니다. 여기서 자아와 자기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자아’는 영어로 에고이고, 불어로는 무아에 해당합니다. 자아는 일치가 전제된 고정적 실체로서의 단위를 뜻하며 고백 서사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고백은 합일을 지향하는 순응적 자아의 서사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고백 서사에서 진정성을 지닌 자아 담론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순응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고정불변인 진리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통합 서사로서의 자아 담론은 세계와 자기 자신 중 어느 것도 흔들지 않고, 미리 설정된 하나의 안전한 자아로 복귀하는 것이므로 보수적 담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자기’는 영어의 셀프이자 불어의 스와에 해당합니다. ‘자기’는 변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과정 속에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헬페미니스트는 유폐적 자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은 물론 세계를 들썩여 균열을 일으키는 변이체입니다. 그들은 폭로라는 두려움 없이 말하기를 통해 더 이상 고백 서사 안에 머무는 ‘진정성 없는 피해자’로 남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순수한 피해자’, ‘불쌍한 피해자’, ‘약한 피해자’만 가시화될 수 있는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의 발화 구조를 허무는 일입니다. 듣는 자의 가청 범위에 부합하는 언어를 구사했을 때만 주어지는 말의 자리라면, 그런 자리는 필요 없다는 선언입니다. 헬페미니스트는 자기 자신은 물론 세계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전진하는 존재입니다.
폭로가 두려움 없이 말하기인 또 다른 이유는 폭로가 고백과 같이 안전한 보루를 남겨둔 말의 교환행위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고백은 고백의 값을 챙겨가기 위해 억제와 정제의 문법을 따르는, 속죄와 사죄, 구원을 담보로 한 계산된 말하기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고백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을 드러냄과 동시에 감추는 말하기 방식입니다. 그러나 폭로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비밀을 외침으로써 자신의 안전한 보루마저 없애버립니다. 위험한 말하기로서 폭로는 자신을 ‘전부 아니면 무’를 향해 내던지는 행위이기에 ‘진리의 용기’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폭로는 죄책감에 갇힌 발화 양식이 아닙니다. 고백은 ‘내 탓이오’를 외치는 자책을 통해 자기혐오와 순응화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폭로는 자기검열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계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길어내는 작업입니다. 정작 강간을 자행한 가해자는 소환되지 않고 피해자에게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요구하는 강간문화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잔혹한 폭력임을 고발하는 실천입니다. 폭로는 청자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폭로는 오롯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에만 집중함으로써 자기 배려의 기술로 나아갑니다.
들을 만하게 걸러진 이야기가 아닌, 날 것으로서의 생생한 말하기 방식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통각을 최대화합니다. 지금까지는 말하는 자의 언어구사력이나 어조, 진정성 등이 문제시됐다면, 이제부터 듣는 자의 가청 능력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들을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게으른 청자가 누려온 특권은 박탈되어야 합니다. 파르헤지아로서의 폭로는 자기 배려에 집중함으로써 타자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 내 강자에 대한 두려움과 굴종을 멈추겠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두려움 없이 말하기는 권력의 지배기술에 포섭당하지 않는 저항의 기술이기도 한 것입니다. 폭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임과 동시에 권력의 두 가지 지배 기술 - 규율이라는 미시적 권력기제와 생명정치라는 거시적 권력기제 - 을 분쇄하는 저항의 정치입니다. 자신을 단련, 배양, 성장, 변형하는 자기 통치술로 기존의 통치술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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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페미니스트 선언: 그날 이후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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