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의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백석 평전』.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직접 만나는 방식으로서 그의 생애를 복원해냈다. 백석의 어투, 시어는 물론 시를 전개하고 마무리 짓는 방식과 세계에 반응하는 시인으로서의 태도까지 닮아보려고 했다는 안도현 시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백석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한다.
책에는 백석이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가 일본에서 유학하며 습작할 때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 유년의 시절부터 장학생으로 떠난 일본 생활, 백석의 생을 관통한 사랑이야기까지 백석의 전 생을 보여준다. 마치 소설처럼, 혹은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적 연구처럼 백석의 생으로 끌어들이며, 안도현 특유의 시인적 직관과 통찰, 품격 높은 상상력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더불어 백석의 시와 산문에 드러나 있는 내용과 그의 실제 행적을 비교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으며, 지나치게 과장되었거나 풍문으로만 떠돌던 백석의 연애담과 결혼생활과 관련된 사실까지 정리했다. 저자가 직접 작성한 백석 연보, 백석이 일생동안 기차를 이용해 다녔던 길들을 보여준 지도 등을 통해 이해를 더했다.
한국에 몇일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딱 하루라는 시간이 생겼다. 한국을 떠나기전에 카메라로 담아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결국 한나절이라는 시간에 어디를 갈까 고민중에 문득 길상사가 떠올랐다.
몇해전 법정스님의 입적하시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길상사. 원래는 “대원각” 이라는 요정이었던 건물을 주인이 법정스님에게 그냥 드려서 절로 바꾸었다는 길상사. 법정스님의 뜻 처럼..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길상사.
길상사를 보시하시고 돌아가신 자야라는 여인은 유언에 죽으면 화장을 하여 그 재를 첫눈 오는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그 자야라는 여자는 평생을 사랑한 시인이 있었단다.
바로 시인 백석이다.
젊은 시절 백석은 이 여인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만들어 주었고. 신분 차이때문에 해어지는 날 그 유명한 백색의 시..<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라는 시를 써주고 백석은 떠났고 두 남녀는 죽는 날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북한이 고향인 백석은 해방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자야는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다..두 사람은 모두 85세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백석도 죽고, 자야도 죽고..법정도 죽은 길상사 마당에는 사연만이 남아있는것을 마리아를 닮은 부처님상이 바라보고 있다.
백석은 일제 통치시기에도 일본제곡주위를 찬양하라는 작품을 쓰기를 강요받았으나 만주로 피신하였고 광복후 이북에 남아서 북한 문인으로 활동했으나 숙청당해서 북한에서 가장 험한곳이라는 삼수 갑산으로 쫏겨나서 살아남기 위해서 위대한 수령님을 찬양하는 시를 발표했다..치욕스럽지만 먹고 사는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시가 체제를 찬양하거나 목적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시가 아니라 선동구호일뿐이다. 2016년 오늘도 아틀란타 여성 문학회라는 단체는 애국 통일 시짓기 대회라는것을 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의 선배들의 그 치욕의 역사를 전혀 느끼지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